만방국제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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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누는 이야기]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
이승주


열방 나무 / 졸업반 / 이승주(12학년)
 

“옛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라는 말은 내게 마치 반가운 초대처럼 다가왔다. 우리 사람들은 과거에 매여 사는 경향이 있다. 뉴스를 보면 한창 잘나가는 연예인의 과거의 비행이 들통나면서 한순간에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과거의 실수로 오랜 시간을 방황하며 허비하기도 한다. 이 세상에서의 ‘과거’란 어떤 모습으로든 우리를 자유케 해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번 학기 주제 말씀의 ‘옛사람’은 오히려 은혜의 상징처럼 내게 들렸다.

나에게 있어서 ‘옛사람’이라고 함은 어디서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이었다. 나의 이기심으로 인한 선택들이 만들어낸 삶 속의 문제들, 게으름에 무너졌던 순간들, 내 속의 죄 된 모습들을 마주하는 것조차 꺼려져서 오히려 합리화하기에 바빴다. 항상 새 결단을 하고 나아가려는 순간에 그 옛사람의 모습이 발목을 잡아 다시 예전과 같이 돌아가는 경험도 많이 해보았기에, 이번 학기 주제를 처음 보았을 때도 이번 학기에 나의 옛사람의 모습을 수도 없이 마주하게 되리라는 생각에 덜컥 두려운 마음부터 생겼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나에게 오늘 ㅎ나님께서는 완전히 새로운 과정을 허락하셨다. 옛사람은 오히려 ㅎ나님의 은혜를 보는 증거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과거에 매여 옛사람의 모습을 금방 죄책감과 자책으로 연결 짓지만 ㅎ나님은 그것을 언제든 벗어버리면 새 사람이 될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셨다. 내가 옛사람을 발견하고 회개하여 감사로 간구할 때 새 사람이 될 수 있는 특권을 이미 2,000년 전 ㅇ수님의 ㅅ자가로 우리에게 주셨다는 이 사실이 얼마나 그 안에서 날 자유케 하는지.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것이 단순히 따뜻한 위로의 말이 아닌 단호한 부르심이라는 것이다.

본문을 읽었을 때 ‘입으라’, ‘벗으라’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 크게 다가왔다. 우리가 입는 것이 우리를 만든다. 아무도 중요한 자리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가지 않듯이, 아무도 운동하러 가는데 정장을 빼입고 가지 않듯이, 학생이 교복을 입어야 하듯이, 우리가 입는 것은 우리의 삶을 비추고 그 정신을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옛사람을 벗어버리라는 것은 나의 옛 삶을 완전히 포기하라는 부르심이며, 새 옷을 입으라 하심은 그에 걸맞게 ㅎ나님의 형상을 따라 참 의로움과 참 거룩함으로 지으심 받은 대로 삶을 완전히 돌아가라는 뜻이다.

그동안은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 하나씩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정직하라, 부지런하라, 사랑하라”라는 말이 삶으로 연결되는 것이 너무 어렵게만 느껴졌는데, 먼저 옛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는 말에 담긴 은혜와 사랑의 원리를 알고 나니 ‘그렇게 살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임을 깨달았다. “정직은 ㅎ나님을 향한 직진이다”라는 말에서 ‘직진’이라는 단어가 참 와닿았다. 우리는 목표가 단 하나뿐일 때만 직진할 수 있다. 아무리 목적지가 같아도 중간에 한눈을 팔게 되면 그건 직진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직진하는 것은 다른 것에 흔들리는 마음을 억지로 참으며 나아가는 게 아니다. 온전히 ㅎ나님을 향한 순수한 열정으로만 갈 때 만들 수 있는 직진이다. 이번 학기 졸업반 시기에 오직 ㅎ나님께로만 직진하는 정직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부지런하여 마귀에게 틈을 주지 않겠노라 다짐한다. 마귀가 집어주는 생각은 단순히 ‘게으름’이 아니다. 부지런의 반대만이 게으름이라고 막연히 생각하면 안 된다. ‘쉽게 쉽게’라는 생각을 한 번 심게 되면 그로부터 짓는 죄는 크다. 게을러지는 건 기본이며, 이 세상에서 이익을 기준 삼게 되니 주변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는 건 낭비가 되어버린다. 우리가 학생의 신분으로 이 ‘부지런하라’를 학업에 적용한다면 그게 바로 예배로 드리는 공부가 아닐까. 청지기의 공부는 단순히 성적을 넘어 ㅎ나님께 드리는 헌신이 기준되고, 주변을 존중하고 섬기며 목적이 사랑을 나누기 위함이 되는 공부이다. 그런 공부를 할 때서야 비로소 졸업반이 자기 자리를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용서받은 것 같이”는 서로를 용서하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조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에서 말했듯이 ㅇ수님을 보내셔서 우리에게 새 사람이 될 기회와 자격을 주신 그 말로 다 이룰 수 없이 큰 은혜와 사랑을 우리는 이미 받았다. 그 사랑에 빚진 자로서 죄에서 자유케 하신 ㅎ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며 빌립보서의 말씀이 떠올랐다. “푯대를 향하여 ㄱ리스도 ㅇ수 안에서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이전에 있는 것은 모두 잊어버리고 앞에 계신 ㄱ리스도께로 달려가라는 말씀이다. 옛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다는 것 역시 이와 같은 것 같다. 내가 어디까지 이루었고, 이전에 어떠했는지에 관계없이, 내가 향할 푯대이신 ㅎ나님을 발견했을 땐 이전 것은 던져버리고 부지런하게, 사랑하며, 오로지 직진하는 것이다. 완전히 삶은 뒤집어지는 것이다.

이번 JD 때 경험했듯이 졸업반 시기, 그 이후에도 나를 옆에서 흔드는 것, 자꾸 옛사람의 나에게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새 사람으로 부르시는 그 은혜에 시선을 두며 나아가기를, 푯대를 향해 끝까지 직진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게 되었다. 맞는 시기에, 맞는 말씀을 허락하심에 감사하며 마친다.